Sit on the fence +1, 53×507.5cm, Oil on panel, 2021

 지난밤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 잠든 탓일까, 어제 친구와 대화의 끝을 맺지 못한 채 서로 등을 돌려버린 탓일까. 오전 6시,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피곤한 건 여전했지만 잠을 더 자고 싶진 않았기에, 개운하게 씻고 나오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지리라 생각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축축한 슬리퍼에서 찝찝함이 가득 묻어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씻고 나오면 다 해결될 일이 아닌가. 눈을 곱게 뜨고 이리저리 거품 튄 자국이 가득한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나였던 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져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손, 발도 그 어느 곳에도 문제는 없었다. 오직 머리만이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거울이 더러운 탓에 헛것을 본 것일까 싶어 바득바득 닦아내 보아도 여전히 머리는 두 개였다. 두 머리는 서로를 부정하며 조금이라도 뒤처질세라 혼란스럽게 움직여 댔다.
 놀라움에 주뼛거리는 것도 잠시,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감추고 싶은 생각에 뭐든 뒤집어쓸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거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비닐봉지가 보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닐봉지에 머리를 우겨 넣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주변을 살피러 거리로 나왔다. 비닐봉지를 쓴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저들도 나처럼 두 갈래의 머리를 가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들 역시 가리고 싶은 것이 있을 테지.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난 평생 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채로 비닐봉지에 덮여 살아야 하는가. 이런 모습이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묘한 긴장감이 돌아 나에게 활기를 돋아주는 듯 했다.

  이것 저것 생각하며 길을 걷다 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다다랐다.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곳인지 땅따먹기를 한 듯한 흔적과 동물 모양의 말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차릴 틈도 없이 바로 한 무리가 보였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어보고, 운이 좋다면 이 모습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다가갔다.  
 저기... 어깨를 툭툭 치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이 일제히 돌아보는데, 그들의 모습에 말문이 턱 막혔다. 짐승의 모습을 한 이들이 나를 가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다시 앞을 보게 한 뒤에,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을 찾으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들 앞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자가 숟가락에 무언가를 듬뿍 떠서 먹여줘주는 모습이 보였다. 숟가락 위의 무언가가 저 앞에 놓인 게임의 보상인지 실수를 덮으려 주는 뇌물 같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퍼다 주는 것의 주인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여, 주인이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선심 쓰듯 한입 가득 나눠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저 저 해맑고 가여운 털북숭이들의 한 입이 또다시 주인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없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저 옆에서 나지막하게 소리가 들렸다. 듣기 좋은 음색으로 내뱉어지는 소리는 나를 그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꽃의 탈을 쓴 자가 방긋하게 웃는 얼굴로 피켓을 들고 외쳤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단호하면서 웃음기 가득한 어조로 쏘아붙였다. 비닐봉지로 얼굴만 가린 우리와는 다르게 그들은 온몸을 보기 좋게 가려 놓아서, 어느 부분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그 누구보다 좋은 통조림에 포장됐다. 깔끔하고 보기 좋은 문구가 가득 적힌 통조림은 삽시간에 팔려나갔다. 통조림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내 손에도 어느새 통조림 한 개가 놓였다. 기대를 가득 안고 통조림이 열어젖히자, 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부산물이 엮여 부패한 모습으로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내 앞에 펼쳐졌다.
 인상이 푹 찡그려졌다.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거야?”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놀라,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통조림에서 쏟아져 나온 액체로 만들어진 이가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이야 이리 와서 같이 즐기자”
 싫다. 나는 저들과 섞이고 싶지 않다. 저들과 함께한다면 두 갈래로 갈라진 머리도 녹아내려 한 덩어리로 뭉쳐서 저들과 같은 인간의 형체가 될 테지만, 절대 섞이지 않으리라 되뇌며 발걸음을 돌렸다.

-삑- 뭔가 발에 차이는듯한 느낌에 흠칫 놀라며 밑을 내려다봤다. 개구리인가. 청록색의 미끈거리는 조그마한 생명체가 연신 바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편의상 이들을 개구리라고 부르겠다) 개구리들이 조금 전 내게 끔찍한 목소리로 말을 걸던 액체를 조약돌만 한 손바닥으로 한껏 끌어모아 고깔에 담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고 이들의 작은 몸짓을 가만히 쳐다봤다. 모든 개구리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서로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개구리, 서로의 고깔을 비교하는 개구리, 힘없이 나뒹구는 개구리도 있었다. 그 옆에는 관리자로 보이는 이가 무언가 체크를 하는데, 아마 그것은 개구리점검표나 스도쿠 따위가 아닐까 예상해 본다. 
 개구리들이 고깔에 액체를 가득 채워 향한 곳에는 기다란 책상과 연구원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액체로 뭘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놓인 커다란 상자들속을 채워넣을 것을 만들고 있고 그 상자 속의 초록의 무언가가 개구리에게 희망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다란 상자 안에서 1m 겨우 되는 초록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초록으로 반짝이는 상자가 내게도 희망을 보여주어 나의 머리를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머리에 쓴 비닐봉지를 슬쩍 들춰보았다. 여전히 나의 머리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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