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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 on the fence, 53×72.5cm, Oil on panel, 2021
작업의 시작은 내가 좋아하는 푸른 바다였다. 푸른 바다를 그리면서 밑에 깔린 돌들에 더 눈길이 갔고, 돌 하나보다는 그 군집을 상상하며 입을 씰룩거리는 듯하였다. 금방이라도 몸을 달리하여 살아 움직일 것 같았던 돌에 눈을 그려 넣으면서 보다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돌 뿐만이 아니라 모든 개체에 눈을 그려놓고는 상상을 했다. 혼자서 되뇌고 고민하던 모습과 불특정한 형태의 개체에 투영시켜 여러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작게는 10분 전 욕을 나지막하게 뱉으면서 지나가던 사람에 대한 의문에서 크게는 환경문제까지 끝없는 상황과 대화를 펼쳐냈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대화들은 한 번도 제대로 결론이 난 적이 없다. 계속되는 자기부정과 충돌의 결과를 새로 쓸 뿐이었다.
상상의 결과로서 나타난 나의 작품들은 사실 썩 유쾌하지 않고 오히려 관객의 불쾌감을 끌어낼 테지만, 그들이 느낄 불쾌감 또한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 결과물은 나의 작업에서 막연한 기대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찬 작품 속 이야기로 나타난다. 때로는 돌과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온갖 개체가 혼재된 모습으로…
<Sit on the fence> 시리즈는 환경이라는 쟁점을 두고 양극화된 모습을 통해 의문과 불안감을 풀어보고자 했다. <Sit on the fence>를 기점으로 <Sit on the fence+1>과 <Sit on the fence-1>로 퍼져나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순점이 가득한 상황의 전개를 보여준다. <Sit on the fence+1>은 환경을 바라보는 긍정적 시각으로 회복과 극복을 꿈꾸는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고, 이를 위한 희생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것 또한 볼 수 있다.
<Sit on the fence-1>은 미래와 환경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또는 변화에 대한 무의지적 태도를 보여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희미한 빛을 향하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1(플러스)’와 ‘-1(마이너스)’의 상황은 서울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끼타워의 모습을 재구성한 작품<A or B>로 보여주고 있다. 이끼를 통해 회복을 바라는 모습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희생과 회복을 두고 회복을 선택하고야 마는 상황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 물음 살펴보자면, 아주 잠깐의 조명과 회복조차도 희생이 따라오는 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과 희생이 있기에 더욱더 커다란 회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작품 <A and B>와 <A(1)-B(1)-B(2)-A(2)-B(3)-A(3)-A(1)> 는 위의 글과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에서 피어나는 대화로 풀어낸다. 각 개체는 눈을 맞추며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지만, ‘A와 B’ 각자의 입장에 서서 좁힐 수 없는 질문과 대답만이 오고간다. 이 모습을 통해 자기부정을 거듭하며 일어나는 불쾌한 상황에 관객은 집중해 볼 수 있다.